순애 잉꼬 부부였던 빅토리아 여왕, 앨버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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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대 영제국 황제 윌리엄 4세가 사망하고 그 뒤를 이어 18살 처녀인 빅토리아가 여왕으로 즉위했다.
여왕으로 즉위한 빅토리아는 즉위하자마자 국가단위 중매로 남편 감을 물색하기 시작 했다.
이때 여왕의 남편 이 되기 위해서 수많은 유럽의 왕족들이 런던으로 모였다.
그리고 빅토리아 여왕은 한 남자 에게 바로 반해버린다.
독일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의 앨버트공.
상당한 미남자 로 빅토리아 여왕이 한눈에 반해버렸다.
빅토리아 여왕이 그를 처음 보고 일기장에 묘사하길
"푸른 눈에 아름다운 코, 하얀 치아"
로 외모에 대 해 극찬했고 지식과 교양까지 겸비한 완벽한 남자 였기에
빅토리아 여왕이 직접 찾아가 프로포즈를 하면서 부부 생활이 시작 된다. >
이들의 부부 생활은 당시 짐승의 세계관이었던 영국의 상류층과는 궤를 달리했다. 앨버트공은 그 흔한 정부를
단 1명도 만들지 않은 채 오직 빅토리아 여왕만을 바라보며 남편 의 역 할에 최선을 다했다.
성격이 괴팍하기로 소문난 빅토리아 여왕은 키가 작고 뚱뚱한게 콤플렉스 >였는데
첫째 아이를 임신하자 더 뚱뚱해지고 성격이 더 더러워졌다.
그런데 앨버트공은
"미래 의 어머니 가 될 임산부는 너무나도 아름답다." >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내 아내" >
라고 하며 그녀 옆을 끝까지 지켰다.
빅토리아 여왕도 오직 남편 앞에서만 얌전해졌으며 이동 할때마다 그의 품에 앉겨 이동 했다.
참고로 당시 상류층 귀족들 사이에선 혼외 정사가 흔했고, 과도한 음주와 밤샘 파티 역 시 일상적이었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공은 무려 9남매를 낳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금슬을 과시했다. >
빅토리아 여왕은 > >"남편 의 허락없이 옷 한벌 입지 않았다." > >라고 할정도로 깊이 의존했으며 >
앨버트공 또한 여왕의 남편 으로서 모든 대 내외 역 할을 모범적으로 완벽하게 관리했다. >
심지어 부부 싸움을 했을때 >
(주로 빅토리아 여왕이 소리치고 앨버트공이 도망침) >
빅토리아 여왕이 사죄하러 찾아오면 바로 문 열어 주지 않고 >
"영국의 여왕입니다." >
"빅토리아입니다." >
"당신의 아내입니다." >
까지 말해줘야 문을 열고 그녀의 사죄를 받아주었다고 한다. >
앨버트공의 사망으로 정신을 놔버린 빅토리아 여왕 >
이렇게 잉꼬부부를 자랑한지 21년 째 되던 날...
안 타깝게도 1861년 12월 앨버트공은 장티푸스로 사망하고 만다.
빅토리아 여왕은 이에 깊이 절망한채 윈저성에 은거하고 모든 공무를 놔버렸다.
하지만 대 영제국의 모든 공무는 여왕이 싸인해야 최종 승인나기 때문에
의회의 계속된 설득과 시민들의 반발 때문에 다시 공무에 나서게 된다.
다만 이때부터 빅토리아 여왕은 모든 공식 석상에 검은 상복을 입으며 남편 을 기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1901년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은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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