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나에게 가해진 한국 사회의 억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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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결말로 치닫는 대선 정국의 열기는 케이팝 신으로 번져 나갔다.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가 인스타그램에 숫자 2번이 박힌 붉은색 점퍼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 기호 2번에 상징색이 붉은 색인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지지하는 메시지로 간주됐다. 댓글 창은 성토로 뒤덮였다. 왜 민감한 시국에 오해받을 사진을 올리느냐, 왜 아이돌이 정치적 의사를 밝히느냐, 왜 탄핵당한 대통령의 정당을 지지하느냐 같은 댓글이다. 사진은 두 시간 후 삭제됐다. 카리나와 SM은 다른 의도 없이 올린 사진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분명히 해두자. 이건 과열이다. 활자로 된 텍스트 하나 없는 사진을 두고 의도를 추측하다 못해 단정을 지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오해를 빚을 만한 맥락이 축적돼 있긴 하다. SNS가 활성화되며 연예인들의 사회적 발언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된 이후 큰 선거가 처음 치러진 2012년에는 연예인들의 투표 인증샷이 유행했고 논란이 뒤따랐다. 투표소 앞에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렸다가 특정 정당의 기호를 연상시킨다고 선거법에 위반된 사례도 있다. 이후 누군가 투표소에서 어떤 색깔 의상을 입었다, 어떤 포즈를 취했다 같은 숨은그림찾기가 선거철마다 벌어졌다.

카리나의 사진은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방송 토론회를 하던 시각에 사진이 올라왔기에 한층 오해를 부른 것 같다. 케이팝은 여론으로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강하게 요청받는다. 가수의 사적인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툭하면 곤장을 맞기에 기획사들은 내부에 검열 체계를 갖추게 됐다. 이런 체계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기에 역으로 숨은 의도를 확신할 근거가 됐을 것도 같다. “SM 같은 대형 기획사가 저런 사진을 올리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몰랐을까” “틀림없이 의도가 있다” 같은 넘겨짚기다. 아이돌 개인의 SNS라고 해도 일반인처럼 혼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겪지 않아도 될 논란이 기획사의 미흡한 리스크 관리로 초래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역시 분명하다. 당사자가 진의를 밝혔다면 의심을 거두고 받아들여야 한다. 더 이상 논란을 이어 가는 건 오히려 카리나에게 정치색을 덮어씌우는 것이고, 해프닝을 빌미로 이미지에 흉터를 새기려는 시도일 뿐이다. 국민의힘 인사들이 카리나의 사진을 재게시하며 그의 용기(?)를 응원한다는 투의 글을 남긴 건 부적절했다.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인기 아이돌이 자신들을 지지한다고 기정사실처럼 못 박은 것이다. 선거운동을 위해 카리나의 이미지를 이용한 일종의 무단 도용이다.

표현의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도 연예인들의 정치적 의사 표명은 반작용을 부른다. 가능한 입을 다무는 것이 매니지먼트 차원에서 안전한 일이다. 최고의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는 가수로 데뷔할 때 음반사로부터 정치에 관해 말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2018년 미국의 중간선거를 시작으로 2020년과 2024년 대선에서 민주당 지지의사를 밝혔다. 한국과 미국 같은 양당 체제 국가에서 어느 한 정당을 지지하면 문화시장 소비자의 나머지 절반을 이루는 국민과 대치하게 된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공화당 측의 질타와 직면했지만 행보를 물리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연예인의 정치적 입장이 표현 자체가 억압되는 경향이 있다면, 미국에서는 표현의 자유의 이념형대로 비판과 공존하는 방식으로 표현이 수행된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현실적 상황과 별개로, 왜 한국에서 연예인은 정치적 입장을 가지는 것이 죄가 되는가. 그들을 ‘공인’으로 규정하며 영향력을 함부로 행사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여론 때문이다. 흡사 공무원과 같은 정치적 중립의 의무가 강요된다. 물론 예전에 비해 정파적 입장을 밝히는 연예인들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이들은 대부분 주류 미디어 밖에서 활동하는 위치에 있다. 아이돌처럼 유명세가 큰 이들은 아직도 옛 시대의 틀에 갇혀 있다.

산업적 차원에선 케이팝 기획사 시스템의 불균형이 작용한다. 캐시 카우 역할을 하는 그룹의 멤버 몇 명이 회사의 매출과 평판을 등에 지고 있어 그들의 언동이 수천억이 오가는 회사의 리스크로 직결된다. 팬덤은 그룹이 논란에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이돌이 해석의 여지가 있는 발언을 할지라도 “과잉 해석”일 뿐이라고 변호하며 의미를 탈색한다. 아이돌의 자기표현은 시스템 내외부의 압력 모두에 의해 검열당하는 입장이다.
이번 논란은 아이돌이란 존재에 집중된 한국 사회의 어떤 억압성이 발동한 사건이다. 여론의 비난이 표면에서 벌어진다면 그 아래에 기획사의 책임이 있고 더 심층에는 억압성의 코드가 있다. 그 코드는 사회를 이루는 모두가 돌아봐야 할 과제다. 그것을 아이돌 개인을 비난하는 것으로 방기해서는 안 된다. 이 사회가 더 자유로워지는 길은 설령 카리나가 국민의힘을 문자 그대로 지지한다고 해도, 논쟁이 일어날지라도 죄악시되지는 않는 방향일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상징하는 민주주의 정신도 결국엔 그처럼 국민 모두의 주권 표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 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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